성전 건립

 

편지를 받고 많이들 놀라셨죠?  어떤 분은 화가 나셨을 것이고 어떤 분은 이참에 성당에 안나올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겠죠? 함께 하지 못해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고 또 한번은 거쳐야 하는 것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 신자분들이 힘들어할 때 함께 하여 얘기를 들어주고 설명하고 격려할 수 없어서 죄송했습니다. 추기경님의 일정으로 우리의 일정이 여러차례 바뀌는 과정에서 이러한 공백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가 얘기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은 하느님의 성전을 마련하는 것.
40여년을 이리 저리 옮겨다니며 셋방살이를 했던 우리에게는 많은 느낌을 준다.
(하와이 매달 7천5백 Rent… 자체성당이 허락되지 않아서)

이렇게 볼 때 우리 성전은 이국 땅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우리들만의 공간을 의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집이다. 성탄시기에 우리에게 계시되는 주님의 이름이 임마누엘인데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이는 이 지상에 인간들과 함께 하시고자 함은 하느님의 원의이며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 표현이다.  우리가 마련하고자 하는 성전은 다름 아닌 이 지상에서의 하느님의 임재, 즉 함께 하심을 가시적으로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성사이다. 

무릇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함께 할 때는 아무리 좋은 일이고 의미있는 일일지라도 마음이 서로 통해야 가능하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가 서로 통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같은 신앙을 나눈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신앙이 아니면 우리가 적어도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신앙은 주님의 선물이고 우리는 이로써 주님께 가까이 간다. 주님께서도 역시 신앙을 통해서 우리에게 당신을 건네신다.

이런 의미에서 성전건립은 분명 신앙의 표현이다. 우리 각자가 가진 주님과의 관계인 것이다. 교회 안에 지불하는 멤버쉽 fee가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이다. 가족의 일원이 서로 짐을 나누어지듯이 우리도 서로 짐을 나누고자 한다. 아이가 짐이 무거워 힘들어하면 부모가, 또는 다른 형제가 픽업하듯이 우리가 서로 나누고자 한다.

지금까지 모여있는 질문들을 살펴보자.
 
[기금모금은 왜 하나?]
10년 후에는 어떤 식으로든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버나드 성당 역시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세상을 떠나는 신자들에게 유산의 일부를 성당에 남길 수 있도록 권유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다만 10년동안 미리 낼 필요가 없으니 이자를 면하게 된 것이다.
 
 
[10년이라는 기한이 있지 않는가?]
  미리 시작하고 계산을 대봐야 모자라는 부분을 함께 걱정할 수 있다.  대밑에 가서 뭔가를 할려고 든다면 우리는 무리수를 두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장이라면 우리 집을 10년 뒤에 갚는다고 지금 아무 것도 하지않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왜 10년에 갚을 돈을 3년에 거두려고 하는가?]
길수록 청하기도 좋고 내기도 쉽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사 등) 차질이 생기고 공동체가 너무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게되고 선교가 어려워진다는 것이 경험을 가진 공동체들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공식적인 기준은 3년으로 하되 개인적으로는 5년을 선택할 수도 있다. 어떤 분은 내 생전에 마련하는 이 성전을 위하여 이 돈을 꼭 내고 싶은데 지금은 형편이 어려우니8년 동안 내겠다고 하신 분도 예외적으로 있었다. 이런 마음이 성전을 이루는 것 아닌가?
 
 
[왜 모금을 신자들 모두 한번에 안하고 일부 신자들만 먼저 접촉하는가?]
이 문제는 [성전 기금 모금 계획은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를 보면 알겠다.
교구청과 연계된 회의로 함께 확정된 이 계획은 여타의 여느 펀드 레이징과 크게 다르지 않게 계획되었다. 남다른 특별한 방법도 어떤 surprise도 없다. 즉, 전체인구의 10%가 전체 모금액의 60%를 모금하며, 그 10% 사람들을 먼저 조용하게 접촉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룬 뒤에 전체에게 발표하며 기금운동을 시작한다… 라는 것이다.
여기에 문제점을 느낀 우리가 교구청에 내민 카드는 문화적인 해결이었다. 즉, 이민자들의 살림에서 재정적으로 뛰어난 10%의 인구를 기대하기 어렵다. 3-40% 인구가 60% 감당하는 것이 합당함을 제시했고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먼저 3-40%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접촉하는 조용한 모금기간(Quiet Phase)이 있고 나중에 전체에게 공개하고 함께 나아간다(Open Phase)는 계획인 것이다. 이는 전체에게 더 쉬운 모금 운동이 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과정에 이러저러한 질문들과 의혹들이 제기되는 것을 확인한다. 우리 문화는 이러한 조용하게 진행되는 과정이 아무래도 불가능 하겠구나를 느끼면서 이를 멈추고 3주전에 모든 신자에게 먼저 발표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할 기회를 실제로 잃게된 것이다.
 
 
[성전기금 헌금자들을 recognize 하는 방안은 준비되어 있나?]
성 다블뤼 성당이므로 성당 한 벽에 다블뤼 성인 쉬라인을 하나 설치하고자 한다. (우리 성당에는 제대 양편에 성가족과 수태고지에 대한 쉬라인들이 각각 자리하고 있다.) 다블뤼 성인의 유해와 함께 그 분의 부조나 흉상을 준비하고 그와 함께 recognition 방법을 찾을 것이다.
 
 
[이미 가지고 있던 성전 건립기금은 어찌 되었나?]
옛날부터 내려오는 금액과 그동안 김치와 된장, 성물판매, 아이들 SAT 교육 등 등으로 모은 모든 금액이 45만 여불이다. 이 돈들은 우리가 살게 될 이 성전을 보수하는데 쓰여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돈을 따로 새롭게 마련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성당은 우리가 들어오기 전과 비교한다면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적지 않은 분들의 노력과 희생, 시간과 땀으로 좋은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아직도 불편한 곳이 많지만 시간을 가지고 이에 임할 것이다.
지금까지 쓰여진 것이 모두 30여만불이고 앞으로 예상되는 것이 25 여만불 정도이다. 정확히는 모를 일이다. 10만불의 차액은 박병준(B J Park) 님이 내어 주셨다. (이 분은 비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조카 결혼식에 참여하여 아름다운 성전과 전례에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하여 일전에 5천불의 도네이션을 하신 적이 있는데 또 다시 큰 도움을 선듯 내어 주셨다.)
 
 
[왜 나의 몫은 그렇게 많은가?]
일반적으로 모든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알아서 약정을 하게 되면 모금 목표액의 1/3만이 완성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예견이다. 우리가 읽고 공부한 모든 책들이 그렇게 말해주고 경험자들도 공유하는 실제들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예상보다 3배 정도를 생각해야 보통 모금이 완성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교회는 guide line으로 청약금액을 제시한다. 그것이 여러분들이 받았던 편지의 내용인 것이다. 이는 3주전에도 제가 말씀 드렸듯이 simply 가이드라인이다.
교회는 여러분에게 청하고, 대답은 여러분 각자의 몫이다. 여러분이 대답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가 대신 대답한다면 강제 청약이지 않겠는가?

  만 불     156주(3년) x 65불        

  저도 550불(월급)/2 = 275    36개월 내니 9900불이다. (하루 수입 18불 중에 반)
  성모님께서 100불 채우실 것이니  만불을 내고자 한다.
 
  만오천 불  97불/주
  이만 불            130불/주
 
             ** 결과적으로 하루에 10불이면 만불이고  20불이면 2만불이다.

어떤 분들은 제시된 금액보다 더 내고 어떤 분은 더 적게 낸다. 온전히 여러분 각자의 결정이다. 가족들이 짐을 메고 먼 길을 떠난다면 짐을 나누어질 것이다. 작은 짐을 메는 이도 있고 큰 짐을 메는 이도 있다. 한 구성원이 무거움을 호소하면 다른 구성원이 픽업한다. 즉, 내가 많이 지면 다른 이가 적게 질 수 있고 내가 적게 지면 다른 이가 많이 지게 되듯이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일이다.
문제는 기쁘게 내는 것이다.  즉, 기쁘게 낼 수 있는 만큼 내는 것이다.
이는 최선을 다하되 어느 정도의 희생을 플러스하는 정도가 되지 않겠나? 넘치게 거두면 우리 모두의 기쁨이고 모자라면 또 어떤가? 우리 모두가 함께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지 않겠나? (골프대회이든 바자이든 물건 판매든…) 
우리가 하는 것은 무리수를 두자는 것이 아니다. 일찍 시작해서 상황을 가늠하고 답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늦게 시작할수록 무리수를 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도 우리 신자들이 다 함께 참여하는 성전이루기 운동에 함께 하고자 한다. 주님 앞에 내어놓을 내 몫의 선물도 챙겨야 되지 않겠나 싶다. 저의 한달 월급은 550불이다. 하루에 18불을 번다. 그 돈의 반을 매일 내어놓겠다. 3년이면 9900불 정도에 이른다. 성모님께서 100불을 도와주실 것이다. 그래서 만불을 청약하고자 한다. 이 아름다운 성전을 이루는 데에 내가 함께 했다는 것을 지니고 주님께 간다는 것. 나는 기쁘다. 
 
[다음 주에 있을 호텔 점심]
그렇게 쓰여지기 보다는 그냥 친교실에서 간단히 하고 기금을 모으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걱정을 하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 얘기를 듣고서 실상 내 마음은 기뻤다. 생각은 다를 수 있으나 마음은 같지 않는가? 방법은 다를 수 있으나 마음은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지 않는가. 다함께 걱정하고 더 나은 방향을 찾는 우리 공동체의 모습이다. 좋다. 우리 성전은 마음으로, 신앙으로 지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함께 celebrate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보다 교구청과 함께 내린 결론이다. 먼저, 기금을 모으는 것은 희생이다. 결코 적지 않은 희생이다. 그러나 성전을 이미 들어와서 살면서 좋다는 기쁨을 표현하고 서로 나누기도 전에 희생하라고 하는 것은 좀 순서가 바끼지 않았나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계획되었다. 또한 동시에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약정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되지 않겠나 하는 것이었다. 우리 다함께 Let’s go! 하는 마음으로 시너지를 얻고자 하는 계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였다.
모금 위원회 내에서도 굳이 이런 방법으로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견이 있었다. 또 실제로 모금을 위해서 모금액의 아주 작은 일부를 경비로 쓸 수 있는 것이니 하자는 다른 의견(교구청 역시 동의했던 이론)도 있었다. 이런 저런 걱정을 안고서 이 계획을 진행하던 중 이러한 상황을 들었던 우리 중에 몇몇 분들이 그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선듯 나서 주셨다. 필요는 있지만 방법 때문에 망설이다가 힘을 얻은 것이다. 선물이다.
 
3달이 넘게 매주 1회씩 만나왔던 기금 모임인지라 모든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던 분들도 있었던 탓에, (모금액에서 쓴다는) 예전에 했던 회의 내용과 (그 금액이 도네이션 되었다는) 실제 상황 사이에 혼선이 야기된 것도 있는 듯하다.
 
나는 우리 성당 모든 분들이 나와서 함께 이 기쁨을 나누기를 바란다.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다같이 한자리에 앉아서 기쁨을 표현하자. 기쁨을 나눌 때는 기쁨을 나누고 희생을 나눌 때는 희생을 봉헌하자.

할 수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 성당을 찾아왔던 알라스카 본당 신부를 기억한다. 알라스카 250명/85가구가 100만불에 개신교회를 구입하고 90만불 공사를 했는데 은행에 돈을 빌릴 수가 없어서 도움을 달라던… 그들은 실재로 25여만불의 외부도움을 제외하고도 200만불 넘는 금액을 감당해야 했고 아직도 하고 있다. 그들의 성당과 사제관을 다 합쳐도 우리 성당의 1/5쯤 되어보이는 건물이었다.
나는 믿는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주님의 성전이다. 주님께서 이루실 것이다.
 
너무 부정적으로 되지 말라. 많은 돈을 달라고 한다고 이리 저리 얘기하면서 부정적인 마인드를 서로에게 키우지 말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은 아니다.
그저 조용히 기도하라. 그리고 기쁘게 결정하라. 여러분과 하느님 사이에서 결정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자발적인 것이지, 강제적이지 않지 않느냐? 하느님의 일이다. 그 분이 하시는 일이다. 된다. 
 
우리 일을 우리가 안된다고 생각하면 누가 된다고 하겠는가?
 
다함께 모여와서 기쁘게 임하자.

- 본당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