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름발이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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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 신자
“절름발이 신자”라는 말이 있다.
 
밖에서는 세속에서 흔히 보이는
이기적이고 예민하고 물질적인, 그냥 남다를 것 없이 메마른 사람인데
성당에 들어오면 갑자기 거룩한 모습으로 변신했다가
미사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면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성당에선
성경 말씀이나 교리나 강론에 감동하고 눈물까지 흘리기도 하고
정말 거룩한 마음으로 예수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살아야겠다…
라고 생각하지만
성당 문을 나서는 순간
갑자기 또 세속인의 모습 그대로 되돌아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미사 중에 가슴 뭉클해하며 기도를 하고 나서 ‘아 은혜 받았다’ 했는데
차를 타고 성당 주차장을 나서자마자
옆을 쌩 지나간 다른 운전자를 향해
"저 XXX!  나가 죽어라"
이런 게 절름발이 신자의 작고 우스운 행동사례가 아닐지.
 
"난 열심히 일하는데 왜 수입이 이거 밖에 안되는 거야.
다른 직업들은 돈만 잘 벌던데"
 
이런 생각이 성당 밖에선 머리를 꽉 채우고 있는데
성당에 와 있는 시간에만 잠깐 선해지는 사람들이
대다수의 현대 신앙인들을 구성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사실 신앙의 본질을 잘못 알고
성당에 “잘못 찾아온” 경우들도 많다.
 
하느님에게 뭔가를 요구해서
그것이 이루어지면 하느님의 존재를 믿을 듯한
그런 기복 신앙의 태도는
신앙의 본질을 어설프게 아는 데서 시작된다.
 
본질은
 
무당 = 내가 원하는 걸 해 주겠지 해서 만나는 존재
 
하느님 = 그분이 원하시는 바를 내가 듣고 그 뜻대로 살려고 만나는 존재
 
이렇다.
 
그런데 보통 이걸 정반대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무당 = 접신을 통해 귀신의 말을 듣고자 함
 
하느님 = 내가 원하는 걸 해 주겠지 해서 적당한 행위들을 통해 세속의 것들을 구함
 
운전하다가  다른 차가 운전을 마음에 안 들게 했다고
자기 외할머니 같은 할머니에게 쌍욕을 하는 것도 나쁘지만
자기보다 수입이 적은 사람들을 제쳐 놓고
 
“난 왜 수입이 이거 밖에 안되는 거야” 
 
하는 생각이 훨씬 더 나쁘고,
그런 생각은 심지어 자신의 실질적 행복을 갉아먹기까지 한다.
 
사실 절름발이식 신앙의 어리석고 부끄러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복된 하느님의 자녀가 되려고 찾아와선
스스로의 행복을 갉아 먹는 생각과 행동을 멈추지 못한다.
 
하느님은 성당 안에만 갇혀 계시고
그 사람의 일상에 함께 하시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
 
"기쁜 소식(복음)"을 듣고
그 뜻에 따라 행복을 누리는 것이 신앙이다.
 
내가 짜 놓은 각본 그대로 해 달라고 빌어 놓고
그게 안되면 
하느님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거나
내가 하는 헌금이 "투자 가치"가 있는 건가
이렇게 세속의 잣대를 휘두른다는 건
성당 문턱을 들어설 때부터 길을 잘못 들었다는 증거인 것이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로 인해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지금 백만원을 벌고 있는데
"더도 말고 딱 2백만원만 벌면
만족하고 불만 없을 텐데" 하고 있지만
실제로 2백만원을 벌게 된 그날부터는
신기하게도 불만은 더 커진다.
 
가만히 있는 사람은 목이 약간 마르고,
소금물을 한 잔 마신 사람은 목이 엄청 마르고,
소금물을 연속으로 마신 사람은 끝없는 갈증으로 미친듯이 폭주하게 된다.
 
사람은 얼마를 받아야 만족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풍성해질 때 만족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은 세상의 것으로 마음을 채울 때
멈추지 않는 아쉬움과 스트레스에 직면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흉내내고 살아갈 때
만족과 건강과 행복이
오히려 그 사람을 채우게 된다.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마태오 13: 19-21)
 
 
  - "봉사보다 높은 곳을 향하는 봉헌" 쓰신 분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