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 성경읽기 - 6일 (창21-24)

4 posts / 0 new
Last post
BigTreeMyHome
90일 성경읽기 - 6일 (창21-24)
 
구원 역사 주기(2)  : 성조시대
 
시작기도
†  성조시대에 당신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자손에게 땅과  큰 민족과  세상 모든 민족의 축복의 통로가 됨을 약속하셨습니다. 
◎  오늘 저희가 당신의 약속을 신뢰하게 하소서.
 
묵상
여러분은 어떤 것을 오래도록 기다려본 적이 있습니까? 오늘의 성경 본문에서는 오래도록 기다렸던 출산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해 주시니," (창 21,1).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아들, 이사악이 태어나고 아브라함은 극적인 시험을 통과합니다. 이 역설적인 부분에 주목하십시오: 아브라함은  단지 그의 아들을 포기한 것으로 민족의 아버지, 세상에 복을 줄 민족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2, 15, 17, 그리고 22장에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들, 그리고 계약을 맺으시어 확증하신 약속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많은 후손과 그 후손이 살 가나안 땅을 주실 겁니다.
  2. 하느님께서는 그 후손을 큰 민족(a royal nation, kingdom)이 되게 하실 겁니다.
  3.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온세상을 축복하는 그 근원(source)이 될 것입니다.
성경의 나머지 부분에서 이 약속들은 하느님의 충실하고 애정 어린 보호 아래 서서히 펼쳐질 것입니다.
 
오늘의 독서 :
창세기 21장 - 24장
인터넷 성경  :  http://info.catholic.or.kr/bible/
 
오늘의 묵상 질문 :
사람들이 하느님을 어떻게 신뢰하게 되는지를 오늘의 성경본문에서 찾아 몇가지 말해보십시오. 여러분은 하느님을 신뢰합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BigTreeMyHome
♣ 오늘 성경본문에서는 참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 친족과 아비의 집을 떠난 아브라함에겐 세상 그 무엇보다 친아들에 대한 기다림이 깊었을 겁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친아들 이사악은 아브라함의 나이 백 세가 되어서야 태어납니다. 이 순간 아브라함이 만났던 하느님은 어떤 분으로 느껴졌을까요? ♣ 하가르와 이스마엘은 내쫓기는 신세가 되어 광야에서 마침내 목 놓아 울음을 터뜨립니다. 이 순간 하가르가 만난 하느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 아브라함은 그 귀한 친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해 모리야 산으로 올라갑니다. 손에 칼과 불을 들고 아들과 함께 걸어가는 내내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땠을지? 그리고 아들을 죽이려는 결정적인 순간에 다급하게 막아서는 천사의 음성을 듣는 순간 아브라함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덤불에 걸린 숫양 한마리가 눈에 들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치는 동안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무슨 기도를 드렸을지? ♣ 자신이 섬기는 주인의 아들의 배우자를 찾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먼 여행길을 떠나 그 여행의 목적을 이루게 되는 광경을 보게 되는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주인이 섬기는 그 하느님에 대해 무엇을 알게 되었을지? ♣ 이 모든 순간들이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어떤 감격이 느껴집니다. ♣ 오늘의 묵상 질문은 우리 각자에게 하느님을 신뢰하냐고 질문합니다. 분명 하느님을 저는 신뢰합니다. 그런데 신뢰를 하긴 하는데 동시에 감당할 힘겨움도 함께 느낍니다. ♣ 왜냐하면 하느님께 대한 신뢰는 간절히 원하는 것을 아직 얻지 못하고 기다리는 기간이기도 하고, 척박한 광야에서 버티며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자식이지만 그것이 나의 전부도 나의 소유도 아님을 인정해야하는 것이기도 하고, 죽을 것 같이 힘든 순간 나타나 해방시켜 구원해 주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긴장감이 들었다 풀렸다 하면서 많은 에너지가 드는 일인 거 같습니다. ♣ 최근 제가 하느님의 신뢰를 가장 크게 느끼는 순간은 바로 90일 성경읽기가 시작되고 진행되는 지금인 거 같습니다.
미소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사라를 돌보셨다. @하느님께서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아브라함이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하고 대답하였다. @"나의 주인에게 당신 자애와 신의를 거절하지 않으셨으니,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인간에게 주어진 이 시간속에서 짧다고 한다면 짧을 수 있고 길다고 한다면 길다 할 수 있는 나의 전 생애를 통해서,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하고 대답하였던 저 아브라함의 신뢰를, 나 역시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그 순간부터 하느님께서 나와 항상 함께 하시고 이끌어주셨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음을 뼈 속 깊이 알 수 있기에 나는 감히 "하느님을 신뢰합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victor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사건은 '믿음'을 주제로 신앙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하느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뭐든 못하리?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도 지금처럼 삶이 암흑과 혼돈으로 뒤범벅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너무나 피곤하고 고민이 많아서 비몽사몽이었는데 침대 머리맡에 하얀 옷을 입은 분께서 서 계셨고 "걱정하지 마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어렴풋이 보았습니다. 그 분의 전신을 본 것이 아니라 가슴 아래 하반신만 보았다는 것이 좀 서운했었습니다. * 그 이후로 제가 걱정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고 걱정하며 조바심내느라 정작 해야 했던 일들을 못해서 망친 일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 왜 그 체험을 신뢰하지 못했던 걸까요? 저에게 '공증'을 받은 문서라도 주셨으면 제가 굳게 믿고 살았을 것입니다. * 하지만 개인적인 '현존의 체험'을 믿고 따랐던 성서 속의 인물들처럼 되지 못하고 '긴가 민가'에 사로잡혀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괴감이 드는 때가 참 많습니다. * 아브라함은 창22장 1-2절에서 분명히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아!”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 아브라함은 주님의 현존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신뢰의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