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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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iro
굴비의 추억

가끔씩 인터넷을 통하여 “한국기행”이라는 한국 TV 프로그램을 봅니다.  제목 그대로 한국의 곳곳을 다니며 그 곳의 자연과 주민의 삶을 전하는 프로그램인데 가보지 못했던 또는 가보기 어려운 곳을 접할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입니다.  언젠가 전라남도의 다도해를 다룬 편을 보았는데 배로 한 시간 넘게 가야하는 곳을 포함하여 수 천 개의 섬들에 사는 주민들의 애환을 보고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육지와 떨어져 있기에 문화이나 의료 등 현대가 주는 편리함이 결핍되어 있지만 풍부한 바다 먹거리와 훌륭한 풍광 그리고 자연에 순응하는 여유로운 생활 자세가 그곳에 사시는 분들의 삶을 풍요하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새삼스럽게 알게 된 점 중에 한 가지는 남해에서 잡은 조기가 모두 모이는 곳이 목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목포 어시장에 모여진 엄청나게 많은 조기들은 먼저 크기 별로 분류되는데 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고 밥상에 올라와 한 사람이 부담없이 먹을 만한 크기 (한 20 센티 정도)를 최상품으로 친다고 합니다.  물론 조기를 줄줄이 묶어 꾸둑꾸둣하게 말린 굴비 또한 빼놓을 수 없겠지요.  입맛이 떨어진 한여름에 찬물에 말은 밥 한 사발과 구운 굴비를 쭉쭉 찢어서 먹는 것은 생각해도 군침이 돌게 합니다.

오래 전에 아는 친구들과 함께 했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자유게시판에 있는 글에 댓글을 달 때마다 글 옆으로 줄줄이 달려 있는 굴비가 나타났습니다.  열번째 댓글에는 큰 굴비가, 그리고 숫자가 더 많아지면 황금굴비가 나타나 재미를 더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한 친구가 백번째에는 어떤 굴비가 나타나는지 알아보자며 댓글 달기를 독려(?)했던 생각이 나네요.  댓글들 중에는 단순히 숫자를 채우려는 글도 있었지만 오래만에 접하는 친구들이 소식을 전하는 반가운 글도 많이 있었습니다.

좋은 먹이와 서식 환경을 따라서 조기떼가 다도해 지역으로 몰리듯이 탁월한 교육과 연구 여건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보스턴 지역으로 옵니다.  돌이켜 보면 이곳에서 사는 동안 그렇게 찾아 온 분들 (제 자신을 포함해서)과 수 많은 소중한 만남을 가졌건만 세월이 주는 망각이라는 선물 덕분에 이제 많은 부분은 기억 밖으로 흘려 보냈습니다.  가끔씩 다시금 스치고 싶은 마음이 새순 돋듯이 움터오르면  이런 저런 이유를 핑계 삼아 연락을 해볼까하고 용기를 내어 보다가도 서로의  바쁜 삶을 존중하자는 소극적인 배려를 하며 추억의 한 페이지로 곱게 묻어 두기로 합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 다니던 성당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는데 많은 부분이 회원전용이라서 겉부분만 훑어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자유게시판을 통하여 누구든지 필요한 정보를 구하기도 하고 좋은 글과 의견을 교환하기도 하며 사람을 찾기도 했던 생각이 났습니다.  요새는 그러한 역할을 SNS나 인스턴트 메신저가  어느 정도는 대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업성이나 윤리 보호 차원으로 비공개가 되어가는 홈페이지들을 보고 있노라면 격의없이 만나고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드는 것 같아 어깨가 움추려 듭니다.

작년 여름 캘리포니아에 사시는 오촌 고모님이 저희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저희 집에 오시는 부모님을 만날 겸 또 다른 일도 보실 겸해서 오셨는데 그 동안 손수 쓰셨던 회고록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 책을 읽고 나니 어렴풋이 알고 있던 고모의 삶을 더 자세히 알고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민 오시기 전 고모의 학창시절에 관한 부분을 읽던 중 성당에서 자주 뵙는 어르신과 함께 학교를 다니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떠나시기 며칠 전 주일미사에 가서 인사를 할 기회를 가졌는데 두 분은 세월에 묻혀진 옛 모습은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셨지만 서로의 성함과 은사님들은 기억해 내시고는 아이들처럼 반가와 하셨습니다.  여든이 넘으신 분들끼리 갖는 실로 60년 만의 재회였습니다.  고모가 오시지 않았다거나 회고록이 없었으면 또는 제가 그 성당 어르신을 잘 알지 못했더라면-어느 하나라도 빠졌더라면 이루어지지 못할 뻔한 두 분의 만남을 보고 인연의 기묘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굳이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의 필연성을 떠올리지 않아도 모든 만남은 그 나름대로 소중하고 의미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고향이나 관심사 같이 공통 분모를 가지지 못해도 길지 않은 우리의 삶에서 동시대를 공유하며 산다는 사실 자체가 큰 인연이겠지요.  짦은 만남조차도 내 인생의 일부를 차지하면서 '나'의 모습을 만드니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서 옷깃만 스치더라고 그 만남에 감사하며 사랑을 전해야 하는가 봅니다.  

굴비가 주렁주렁 달려 있던 옛 게시판이 새삼 그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