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6] 제1장 제6일, 지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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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6] 제1장 제6일, 지성주의

[Day 6] 제1장 제6일, 지성주의
 
사람들은 대개 교양 있는 사람으로 대접받기를 좋아하고, 또 소위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것들을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그러나 교만한 자는 결코 하느님의 뜻을 이룰 수 없으며 겸손하게 주님을 믿고 의탁하는 사람만이 진리를 따라 살아갈 수 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겸손하게 믿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여러 가지 신비에 자신을 내어놓는다.
 
1. 시작 기도 :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며 천천히 성호를 긋고 잠시 자신을 반성한 뒤 성령송가(282쪽)를 바치거나 성령에 관한 성가를 부른다.
 
성령송가
오소서, 성령님, 당신의 빛 그 빛살을 하늘에서 내리소서.
가난한 이 아버지, 은총의 주님, 오시어 마음에 빛을 주소서.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 생기 돋워주소서.
일할 때에 휴식을, 무더울 때 바람을, 슬플 때에 위로를.
지복의 빛이시여, 저희 맘 깊은 곳을 가득히 채우소서.
주님 도움 없으면 저희 삶 그 모든 것 이로운 것 없으리.
허물은 씻어주고 마른 땅 물 주시고 병든 것 고치소서.
굳은 맘 풀어 주고 찬 마음 데우시고 바른길 이끄소서.
성령님을 믿으며 의지하는 이에게 칠은을 베푸소서.
공덕을 쌓게 하고 구원의 문을 넘어 영복을 얻게 하소서.
 
 
2. 독서 : 아래 내용을 천천히 소리내어 읽거나 정독하면서 마음에 와 닿는 부분에서는 그 말씀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지를 잠잠히 생각해본다.
 
1) 마태오 복음 11, 25-30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고린토 1서 1,26-31
 
26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8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9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31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참된 신심 72-77항
 
72.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를 다른 사람에게 속하게 하는 데 있어 노예 신분보다 더한 것이 없듯이,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우리를 완전히 봉헌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속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
이에 대한 모범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스스로 “종”의 신분을 취하셨으며(필립 2, 7 참조) 동정 마리아도 자신을 “주님의 종” (루가 1,38) 또는 “주님의 것”이라고 부르셨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부르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였다(로마 1, 1; 갈라 1, 10; 필립 1, 1 참조). 또 성경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주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불린다.
Servus(‘종’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라는 이 단어는 어떤 학자가 지적한 것처럼, 원래 오늘날과 같은 뜻의 ‘고용인’ 또는 ‘하인’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다만 ‘노예’라는 뜻으로만 사용되었다.
그래서 그 주인들은 ‘노예’가 아니면 자유인에 의해서 섬김을 받았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것을 전제하여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mancipia Christi)" 라고 칭했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말한다.
 
73. 즉 우리는 고용된 하인으로서가 아니라 사랑의 완전한 헌신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야 하고 그분을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우리는 위대한 사랑으로 우리 자신을 그분께 바치고, 그분의 것이 되는 영광만을 위해서 그분을 섬기는 데에 무조건 헌신해야 한다.
세례 받기 전에는 우리가 마귀의 노예였으나,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가 아니면 마귀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74. 내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지금까지 절대적으로 말해온 것을 성모 마리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말할 수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삶과 죽음, 하늘과 땅에서의 당신의 영광과 능력의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로서 마리아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성인들이 “본성적으로 하느님께 속하는 모든 것은 은총에 의해서 마리아께도 속한다.”라고 말하고 있듯이, 하느님께서 본성적으로 가지고 계시는 권리와 특권은 은총에 의해 마리아에게도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인들의 말에 따르면 예수님과 마리아는 똑같은 의지와 능력에 참여하시게 되며 또한 같은 신하들과 노예들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두 분 중 어느 한 분께 자신을 바치는 것은 바로 다른 분께도 바치는 것이 된다.
 
75. 성인들과 많은 위대한 사람들의 가르침을 따르면, 보다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모 마리아의 사랑이 가득한 노예라고 말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될 수가 있다.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려오시는 수단으로서 성모 마리아를 사용하셨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마리아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것에 애착을 가지면, 그것은 우리를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데 마리아는 그렇지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마리아의 가장 강렬한 원의는 우리를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시키고자 하는 것이며, 또 성자의 가장 강한 원의는 당신의 거룩하신 어머니를 통하여 우리가 당신께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여왕의 보다 더 훌륭한 종이 되는 것이 왕의 기쁨이 되고 영예가 되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교부들과 그를 이은 성 보나벤투라는, 성모 마리아는 주님께 나아가는 길이라는 의미로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스도께로 가는 길은 성모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다.”
 
76. 더 나아가서 성 안셀모, 성 베르나르도, 성 베르나르디노와 성 보나벤투라는 “동정 마리아를 포함한 모든 것이 하느님의 권하에 있고 하느님께 속한 모든 것이, 하느님까지도 동정 마리아의 권하에 있도다.”라고 말한다.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마리아는 하늘과 땅의 모후이시며 주인이시므로 지상의 피조물들만큼 많은 수의 신하와 노예들이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 많은 노예들 가운데에는 사랑과 자유 의지로 마리아를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 않겠는가? 사람들이나 악마에게도 자발적인 노예가 있다면 어찌 마리아에게는 그 같은 노예들이 없겠는가?
세상의 왕들은 왕후가 생사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자기 소유의 노예를 가지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의 아내인 왕후의 권한이 바로 왕들 자신의 영예와 권력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물며 모든 아들들 중에 가장 착한 아들이신 우리 구세주께서는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께 온갖 권한을 나누어 주셨는데 어찌 우리들이 그 어머니에게 온전히 봉헌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겠는가?
주 예수님께서 마리아에 대해 가지셨던 존경과 사랑이, 크세르크세스가 에스테르에 대해서, 솔로몬이 밧 세바에 대해서 가졌던 것보다도 오히려 덜했다고 감히 생각할 수 있겠는가? 누가 감히 그런 말을 하고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있겠는가?
 
77. 아, 내가 왜 이다지도 필요없는 말을 하고 있을까? 왜 내가 이다지도 명백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증명하려고 하는가? 만일 누가 자기 자신을 마리아의 노예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면 그래도 좋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오로지 바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마리아의 영광이기 때문에 그 사람 역시 마리아의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게 될 완전한 신심인 봉헌을 통해서 완전히 이렇게 되는 것이다.
 
 
3) 준주성범 제3권 43장 1-4항
 
1. 주님의 말씀 : 아들아, 너는 사람이 하는 말이 아름답고 현철하다고 이끌리지 말라. “하느님의 나라는 말이 아니라 힘에 있기 때문”(1고린 4, 20)이다. 마음을 뜨겁게 하고 정신을 밝혀주는 내 말을 삼가 들을 것이니, 마음에 통회를 발하게 하고 여러 가지 위로를 주는 말이다.
남보다 박학하고 지혜롭다는 말을 들을 마음으로 아무 글도 읽지 말라. 너는 악습을 고치는 데 힘써라. 이 일은 어려운 많은 문제를 해득함보다 네게 더 유익한 까닭이다.
 
2. 많이 읽고 많이 인식하였으면 항상 한 원리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사람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자는 나이며, 사람한테서 배워 알 수 있는 이상으로 명석한 이해력을 어린이들에게 준다. 내가 가르쳐 주는 사람은 오래지 아니하여 지혜로울 것이며 영신적 진보가 많으리라.
 
사람에게 헛된 것을 많이 물으면서 나를 섬기는 길엔 별로 관심치 않는 사람에게는 과연 화 있으리라. 모든 선생의 선생이요 천사들의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날 때가 있을 터이니, 그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강(講)을 받으러, 즉 각 사람의 양심을 살피러 올 것이다. “그때에 나는 등불을 켜들고 예루살렘을 뒤지리니”(스바 1, 12), 모든 암흑에 감추인 것이 드러날 것이며, 혀는 변론을 그치고 잠잠하리라.
 
3. 나는 겸손한 자의 정신을 잠세에서 들어올려, 학업을 십 년간 학교에서 연구한 것보다도 더 많은 영원한 진리의 이치를 삽시간에 통달케 하리라. 나는 음성의 요란한 진동이 없이, 여러 의견의 복잡함도 없이, 허영의 외식(外飾)도 없이, 논쟁도 없이 가르친다.
나의 가르치는 과목은 세상 것을 천히 보고, 잠세의 것을 싫어하고, 영원한 것을 찾고 영원한 것에 맛을 붙이고, 명예를 피하고, 악표(惡表)를 참아견디고, 모든 희망을 나에게 두고 나 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모든 것을 초월하여 나를 열절히 사랑하라는 것이다.
 
4. 어떤 사람은 나를 친근히 사랑하는 데서 천상적 사정을 배워 기묘한 말을 하였다. 세밀한 연구에서보다도 모든 것을 버리는 데서 진보하였다. 그러나 나는 어떤 사람에게는 보통 것을 말하여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한 것을 말하여주며, 어떤 사람에게는 표와 모습으로써 기쁘게 나를 드러내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많은 신광 중에 오묘한 도리를 계시해준다.
책은 모든 사람에게 다 같은 말을 하지만 그렇다고 다 같이 감화시키는 것은 아니니, 그 까닭은 내가 사람의 마음속에서 진리를 가르치는 스승이요, 마음을 살피고 생각을 통달하고 행위를 장려하며 나의 공정한 판단을 따라 각 사람에게 은혜를 내려주는 자이기 때문이다.
 
 
3. 묵상(15분-30분) : 마음에 와 닿았던 말씀을 묵상하며 자신을 비추어보고 주님께 도움을 청하면서 그 말씀대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묵상 전 기도
죄에 물듦이 없으신 성령의 짝이시요, 예수님의 어머니시며
저의 어머니시요, 주인이시며, 모후이신 마리아님,
저를 온전히 당신께 드리며
또 당신을 통해 예수님께 온전히 속하여 있기를 원하오니
성령으로부터 제게 영광과 힘을 간구하여 주시고
세속 정신으로부터 저를 깨끗하게 해주소서.
오소서, 성령님!
저의 마음을 당신으로 채워주시고
제 안에서 세속적인 정신을 없애주소서.
아멘.
 
 
4. 생활 실천 : 묵상 중에 느낀 내적인 움직임이나 깨달은 점을 노트에 기록하고 그 내용에 따라 생활에서 실천하도록 한다.
 
 
5. 묵주기도 : 영광의 신비를 바치면서,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으로 인정받기보다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과 겸손되이 벗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한다(묵주기도는 다른 시간에 바쳐도 된다).
 
 
6. 마침 기도 :  묵상한 내용을 마음에 새기고 생활 안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며 바다의 별 기도(282쪽)를 바친다.
 
바다의 별
바다의 별이요, 하느님의 어머니시여
평생 동정이시며, 하늘의 문이시여, 하례하나이다.
죄인의 사슬 풀고, 눈먼 이에게 빛 주시며
악을 멀리 쫓고, 선을 구해주소서.
기묘하신 동정녀요, 가장 양선하신 이여
저희를 죄에서 구해, 착하고 조찰케 하소서.
하느님 아버지께 찬양과
그리스도께 영광과
삼위이신 성령께 같은 존경 있어지이다.